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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두는 여자는 아름답다!”

서울 부광약품, 지난해 동병상련의 여수 거북선 꺾고 선두 나서

등록일 2020.05.29조회수 2,075

▲ 든든한 언니와 당돌한 동생. 서울 부광약품의 승리를 견인한 에이스 김채영과 새내기 정유진의 승리 인터뷰.

5월 29일 금요일 오후 6시 30분, 서울 홍익동 소재 한국기원 지하1층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이현욱 감독이 이끄는 여수 거북선과 권효진 감독의 서울 부광약품 2라운드 2경기가 시작됐다. 두 팀은 지난해 최하위 경쟁을 벌였던 동병상련의 아픔이 있는데 2020 시즌에선 나란히 1라운드에 승점을 올려 이 경기에서 승리한 팀이 2승으로 리그 선두로 올라서고 패한 팀은 1승 1패로 중위권으로 밀려는 동상이몽의 상황이 됐다.

장고대국으로 펼쳐지는 제1국은 여수 거북선의 2주전 송혜령과 서울 부광약품의 새내기 정유진의 대결. 상대전적은 없다. 여자바둑리그 상위랭커 중량감을 생각할 때 대부분 송혜령 쪽으로 기우는 승부를 예상했지만 보여줄 게 얼마나 더 있는지 알 수 없는 신예들의 잠재력이 폭발하면 결과는 알 수 없다.

바둑TV 해설진(진행-배윤진, 해설-홍성지)이 꼽은 하이라이트는 에이스 맞대결로 성사된 제2국. 2020 시즌의 여자바둑리그는 초반부터 에이스대결이 많아 팬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상대전적은 서울 부광약품의 김채영이 여수 거북선의 김혜민에게 6승 5패로 한발 앞서 있지만 이 정도의 승차는 큰 의미가 없다. 관전자들의 예측도 팽팽한 호각.

변수는 오후 8시에 시작되는 제3국이다. 서울 부광약품의 2주전 김미리와 여수 거북선의 3주전 이영주의 대결인데 2주전과 3주전의 대국이라면 조금이라도 2주전 쪽으로 기우는 게 보통이지만 이 대국에선 이영주가 5승 1패로 김미리를 압도하는 천적관계를 보이고 있어 팀의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과는 속기전으로 치러진 제2국, 1주전 격돌이 가장 먼저 드러났다. 대국 초반은 흑을 쥔 김채영의 실리와 김혜민의 두터움으로 갈리는 양상이었는데 흑이 하변에 큰 세력을 형성했을 때 백이 삭감을 겸한 중앙 차단을 시도하면서 때 이르게 중앙 난전으로 불이 붙었다. 쌍방 모두 주도권을 잡을 기회가 있었으나 백(김혜민)이 중앙에서 지나치게 안전운행을 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흑이 우위를 점했고 이때부터 김채영의 치밀한 반면운영이 돋보였다. 양분된 중앙 백 대마를 타이트하게 압박하면서 집 차이를 크게 벌렸고 결국, 우하귀의 마지막 시도로 아쉬움을 달랜 김혜민이 김채영의 정확한 응수에 돌을 거두면서 승부도 끝났다.

김채영의 완승으로 서울 부광약품이 선승을 거뒀으나 팀의 승부는 이후가 중요했다. 제1국은 여수 거북선의 2주전 송혜령의 무게감이 크고 제3국 역시 여수거북선 이영주가 천적관계로 김미리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 부광약품이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계가 아닌 사람의 승부는 모른다. 기세를 타면 누구라도 뛰어넘는 힘을 가진 송혜령에 맞선 새내기 정유진이 뜻밖에도 끈끈하게 따라붙어 엎치락뒤치락하는 균형을 이루다가 기어이 송혜령을 넘어서는 대형사고(?)를 쳤다. 송혜령은 우상귀를 버리면서 우상 쪽부터 우변의 막강한 세력을 바탕으로 중앙에 큰 집을 만들며 한때 우위를 점하기도 했으나 마지막까지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버틴 정유진에게 승리를 넘겨줬다. 예상 못한 송혜령의 패배로 싱겁게 서울 부광약품의 승리가 결정됐다.

승부와 무관하게 된 제3국에서도 통계를 뒤엎는 결과가 나왔다. 1승 5패의 천적관계로 고전할 것으로 예상됐던 김미리가 초반부터 균형 좋은 행마로 주도권을 잡았고 중앙전투에서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설상가상 이영주의 치명적인 실수까지 겹쳐 중앙 흑 대마가 위기에 몰렸고 김미리의 일방적인 공세로 하변 흑 일단이 떨어지면서 승부도 끝났다. 서울 부광약품이 선수 전원 승리로 2승고지에 올라 리그 단독선두로 올라섰고 패한 여수 거북선은 1라운드 선수전원 승리의 기세를 잇지 못하고 중위권으로 물러났다.

2020 여자바둑리그는 8개 팀이 더블리그(14라운드) 총 56경기, 168국으로 3판 다승제(장고 1국, 속기 2국)로 겨루며 두 차례의 통합라운드를 실시한다. 9월에 열리는 포스트시즌을 통해 정규리그 상위 4개팀이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챔피언결정전으로 열리는 스텝래더 방식으로 여섯 번째 우승팀을 가려내는데 단판으로 열렸던 준플레이오프는 2경기로 늘렸다. 3위 팀은 1경기 승리 또는 무승부일 때, 4위 팀은 2경기 모두 승리해야만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을 수 있다.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은 전년과 동일한 3경기로 열린다. 바둑TV를 통해 매주 월~목요일 오전 10시에 중계됐던 여자바둑리그는 이번 시즌부터 목~일요일 오후 6시 30분으로 옮겨 더 많은 팬들의 관심을 받게 됐다.

2020 한국여자바둑리그의 상금은 각 순위별 500만원 인상해 우승팀에게는 5500만원이, 준우승 3500만원, 3위 2,500만원, 4위 1,500만원이 주어진다. 우승상금과 별도로 책정되는 대국료는 전년과 동일한 승자 100만원, 패자 30만원이다.

▲ 이현호 심판위원의 규정 설명과 대국 개시 선언.


▲ 여수 거북선의 송혜령(흑)과 서울 부광약품의 정유진은 첫 대결. 2주전과 새내기인 만큼 관전자들의 예상은 송혜령 쪽으로 기울었는데..


▲ 이번 시즌에는 약속한 듯 에이스대결이 많아서 팬들이 즐겁다. 서울 부광약품의 김채영(흑)은 1라운드에 이어 연속 1주전 격돌인데 여수 거북선의 김혜민마저 넘어설 수 있을까. 상대전적은 6승 5패, 간발의 차이로 앞서 있으나 만만치 않다.


▲ 8시에 시작된 제3국은 여수 거북선의 3주전 이영주가 서울 부광약품의 2주전 김미리를 상대로 5승 1패의 천적관계라 이목을 집중시켰다.


▲ 역시 서울 부광약품의 에이스 김채영. 반면운영이 더 치밀해졌다. 1, 2라운드 연속 1주전 격돌에서 승리.


▲ 그렇잖아도 두터운 기풍인데 너무 안전운행했다. 중앙에서 머뭇거리지만 않았다면 여수 거북선 김혜민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 서울 부광약품의 새내기 정유진, 김경은에 이어 두 번째 샛별 탄생? 아직은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여자바둑리그의 상위랭커를 우연한 행운만으로 넘어설 수는 없다.


▲ 그렇잖아도 낙관파인데 새내기라고 너무 방심했나? 승패에 무관하게 카메라 렌즈는 표정천재(?) 송혜령에 호의적이다.


▲ 소속 부광약품은 덴탈제약기업인데 유니폼에 마스크까지, '슬기생(슬기로운 기사생활)'이라도 찍을까? 1승 5패의 천적관계를 극복하고 선수 전원 승리를 완성한 김미리.


▲ 패배는 병가지상사라고. 배고파 죽겠어. 이제 그만 밥 먹으러 가자고오오~~. 바둑의 복기현장에선 패자도 꽃처럼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