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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두는 여자는 아름답다!”

에이스 빠진 삼척 해상케이블카, 포항 포스코케미칼 맹폭하고 중위권 도약

등록일 2020.05.31조회수 2,387

▲ 1주전 조혜연이 결장한 상태에서 삼척 해상케이블카의 3연승을 이끈 맏언니 이민진과 이용찬 감독의 승리인터뷰.

5월의 마지막 날, 일요일(31일) 오후 6시 30분, 서울 홍익동 소재 한국기원 지하1층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이용찬 감독이 이끄는 삼척 해상케이블카와 이영신 감독의 포항 포스코케미칼의 2라운드 4경기가 이어졌다.

시니어바둑리그에 있다가 2020시즌부터 여자바둑리그로 옮긴 삼척 해상케이블카는 일요일대국에 핸디캡이 있다. 종교적 신념을 가진 1주전 조혜연의 결장 때문인데 반대로 일요일에 삼척 해상케이블카와 겨루는 팀은 아무래도 1승 추가의 기회로 노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요일대국의 상대가 조혜연이 오래 몸담았던 포항 포스코케미칼이라는 사실이 묘한 상념을 준다. 친정팀에 칼을 겨누는 불편함을 피할 수 있어 좋은데, 사전에 논의가 됐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자리를 비워 팀의 전력이 약해졌다는 심리적 부담이 작지는 않겠다.

김성진 심판위원의 대국개시 선언과 함께 시작된 이 경기는 장고대국으로 펼쳐지는 제1국에 출전하는 이민진의 어깨가 무겁다. 오더를 살폈을 때 삼척 해상케이블카는 이 대국을 반드시 잡아야 승산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 마주앉은 포항 포스코케미칼의 2주전 김다영은 2018, 2019 시즌 여수 거북선의 1주전이었고 지난해는 부진했으나 2018시즌에는 다승1위를 차지했던 강자다. 상대전적에서는 이민진이 1승을 거두고 있어 피차 만만치 않은 승부가 예상된다.

제2국은 상큼한 신예대결. 삼척 해상케이블카의 이용찬 감독이 과감하게 2주전으로 기용한 새내기 김은지와 지난해 EDGC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포항 포스코케미칼의 부름을 받은 신예 권주리의 대국. 둘은 첫 대결이다. ‘제2의 최정’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김은지는 1라운드에서 여수 거북선의 백전노장 김혜민과 맞붙어 패기 넘치는 내용을 선보였으나 치밀한 세기 부족으로 완패했다. 권주리도 1라운드에서 서귀포 칠십리의 1주전 오정아에게 패해 두 선수 모두 이 대국에서 첫 승을 노리고 있다.

제3국에서는 삼척 해상케이블카의 후보선수 유주현이 조혜연 대신 기용됐다. 상대는 포항 포스코케미칼의 1주전 박지은. 객관적인 전력평가에서 박지은 쪽으로 크게 기우는 승부지만 지난 1라운드에서, 휴식기를 마치고 막 돌아온 박지은이 아직 실전감각을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유주현에게도 한 번쯤의 기회는 올 수도 있다는 게 삼척 해상케이블카의 바람이겠다. 두 선수 역시 첫 대결.

바둑TV 해설진(진행-김여원, 해설-백홍석)이 꼽은 하이라이트는 제2국. 누가 먼저 첫 승을 따내느냐 하는 새내기와 신예의 대결은 ‘제2의 최정’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최연소 프로 김은지의 승리로 끝났다. 김은지는 시종 권주리의 돌을 압박하는 초강수를 연발하다 중앙전투에서 권주리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위기에 몰렸고 이후 패색이 짙어졌으나 좌하일대의 흑 대마를 집요하게 노려 대마 사활이 걸린 패를 만들어내면서 역전의 기회를 잡았다. 결국, 패의 대가로 좌상일대 흑 대마를 잡으며 형세를 뒤집은 뒤 빠르고 정확한 수읽기를 앞세워 확실하게 마무리했다. 김은지의 승리로 끝났지만 승리의 기회는 권주리 쪽이 훨씬 많았다. 실리로 많이 앞서 있었기 때문에 좌하 쪽 흑 대마를 적당히 보강했어도, 우하 쪽에서 백의 응수타진만 제대로 받았어도, 패가 발생한 뒤 중앙 팻감만 제대로 썼어도 권주리의 승산이 더 높았다.

제2국에서 삼척 해상케이블카가 선승을 거둔 뒤 제1국에서도 삼척 해상케이블카의 이민진이 포항 포스코케미칼의 김다영을 꺾었다. 끈질기고 큰 승부에 강한 이민진의 진가가 발휘된 승부였다. 대국은 종반 초입 좌변에서 백이 흑 한 점을 따내면서 AI의 이길 확률이 김다영 쪽으로 기울었는데 위기에 강한 이민진이 비세를 의식해 우하귀 패로 승부를 걸어갔고 이 패의 대가로 우상귀 백을 잡으면서 일거에 형세를 뒤집었다. 이후는 이민진의 알기 쉬운 정리. 제3국에 무관하게 삼척 해상케이블카의 승리가 결정됐다.

승부와 무관하게 된 제3국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애초 포항 포스코케미칼의 1주전 박지은과 삼척 해상케이블카의 후보 선수 유주현의 대국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박지은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고 유주현이 중앙운영에 실패하면서 박지은의 승리가 유력해졌는데 그때부터 유주현이 예상을 뒤엎는 괴력을 발휘했다. 백의 텃밭이었던 좌상귀를 크게 도려내고 백의 세력권이었던 상변을 우그러뜨린 데다 불안했던 중앙 흑 대마까지 백의 요석을 잡으며 안정을 취하면서 형세를 뒤집었다. 일부 관측자들의 우려대로 박지은은 아직 휴식기 이전의 실전감각을 되찾지 못한 것 같다. 유주현은 새내기답지 않게 종반 끝내기까지 침착하게 마무리해 데뷔전에서 한국 여자바둑계의 전설로 꼽히는 대선배를 무너뜨리는 개가를 올렸다.

삼척 해상케이블카는 에이스 조혜연을 빼고도 3-0 완승을 거둬 1라운드에서 여수 거북선에게 당한 완봉패를 깨끗하게 만회하면서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했고 1주전급 박지은, 김다영을 확보하고 2주전급에 가까운 권주리를 영입해 지난해보다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포항 포스코케미칼은 2연패의 충격 속에 하위권으로 밀려났다.

2020 여자바둑리그는 8개 팀이 더블리그(14라운드) 총 56경기, 168국으로 3판 다승제(장고 1국, 속기 2국)로 겨루며 두 차례의 통합라운드를 실시한다. 9월에 열리는 포스트시즌을 통해 정규리그 상위 4개팀이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챔피언결정전으로 열리는 스텝래더 방식으로 여섯 번째 우승팀을 가려내는데 단판으로 열렸던 준플레이오프는 2경기로 늘렸다. 3위 팀은 1경기 승리 또는 무승부일 때, 4위 팀은 2경기 모두 승리해야만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을 수 있다.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은 전년과 동일한 3경기로 열린다. 바둑TV를 통해 매주 월~목요일 오전 10시에 중계됐던 여자바둑리그는 이번 시즌부터 목~일요일 오후 6시 30분으로 옮겨 더 많은 팬들의 관심을 받게 됐다.

2020 한국여자바둑리그의 상금은 각 순위별 500만원 인상해 우승팀에게는 5500만원이, 준우승 3500만원, 3위 2,500만원, 4위 1,500만원이 주어진다. 우승상금과 별도로 책정되는 대국료는 전년과 동일한 승자 100만원, 패자 30만원이다.

▲ 여자바둑리그 규정을 설명하고 대국개시 선언하는 김성진 심판위원.


▲ 삼척 해상케이블카의 맏언니 이민진은 장고대국(제1국) 전담이다. 1주전이 빠진 오늘은 특별히 어깨가 무겁다. 상대는 포항 포스코케미칼의 2주전 김다영.


▲ 제2국은 새내기 김은지(삼척 해상케이블카 2주전)와 신예 권주리(포항 포스코케미칼 3주전)의 풋풋한 대결. 이 대국의 승자가 먼저 리그 첫 승을 기록한다.


▲ 대기실은 열공모드1. 이영신 감독과 도은교 선수가 지키고 있는 포항 포스코케미칼.


▲ 대기실은 열공모드2. 주일 승부무대에는 올라서지 않지만 응원까지 외면할 순 없다. 삼척 해상케이블카 1주전 조혜연도 제 자리를 지켰다.


▲ 오후 8시에 시작된 제3국. 1라운드 '박 대 박'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고도 역전패한 박지은(포항 포스코케미칼 1주전). 필승을 벼르고 있을 텐데 상대가 삼척 해상케이블카의 새내기 유주현이라 오히려 부담이 될 거 같다.


▲ 연구생시절부터 '제2의 최정'으로 불린 김은지(삼척 해상케이블카 2주전)가 가장 먼저 승전보를 알려왔다.


▲ 아쉬운 권주리(포항 포스코케미칼 3주전). 패했지만 승리의 기회는 승자 김은지보다 훨씬 많았다.


▲ 맏언니 이민진이 삼척 해상케이블카의 승리를 결정했다. 비세일 때 승부패를 걸어 역전승. 큰 승부에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 골몰하는 김다영(포항 포스코케미칼 2주전). 투지와 끈기에서 밀렸을까. 상대전적에서 한발 뒤졌지만 대국내용은 종반까지 앞서 있었다.


▲ 괴물신인, 김은지. 단독 인터뷰인데 전혀 떨지 않는다. 특별한 목표는 없구요, 한판한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건 뭐 백전노장의 인터뷰 같..^^;;


▲ 예전엔 욕심이 많았는데 이제는 진짜 바둑이 좋아서 즐겁게 둡니다. 공자님도 말씀하셨죠. 무엇인가를 할 때 그것을 아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그보다 즐기는 사람이 최고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