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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서울 부광약품, 대역전패 한판 내주고 대역전승 두 판 챙기며 2-1 승리
  • [한국여자바둑리그]
  • 2021-07-25 오전 8:40:46
▲ 권효진 감독과 박지연의 승자 인터뷰. "10년은 늙은 것 같고요. 천국과 지옥을 마지막까지 오갔고... 승운이 따라줬던 것 같습니다." (권효진 감독)

'역전, 역전, 역전.'

AI 승리 확률 그래프가 한 가지 색으로 가득 채워졌다가 반대로 변했다. 세 판이 모두 그랬다. 유독 역전승이 많은 이번 시즌이지만 이렇게 3판 모두 대역전승이 나온 경기는 처음이다. 홀린 듯 패배의 길로 걸어간 선수들은 몇 배의 아픔을 곱씹어야 했고 승자는 머쓱해했다. 지켜보는 감독과 코치는 선수들의 한 수 한 수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정유진이 허망하게 승리를 날려버렸을 때만 해도 서울 부광약품의 승리를 생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돌고 돌아 서울 부광약품의 손을 들어주었고 막내의 아픈 패배를 언니들이 감싸줄 수 있게 되었다.

2위 서울 부광약품과 4위 섬섬여수가 만난 10라운드 3경기에서 서울 부광약품이 2-1로 승리하며 단독 2위 자리를 지켜냈다. 섬섬여수는 3연승의 흐름이 깨졌고 서울 부광약품은 3연승을 내달렸다.


▲ 2국 김혜민-정유진. 김혜민이 행운의 승리를 가져가면서 상대 전적을 1-0으로 만들었다.

2국 정유진(서울 부광약품 3지명)-김혜민(섬섬여수 1지명). 여자바둑리그 2년차 신예와 원년부터 주장을 맡아온 베테랑의 대결이다. 최근 정유진의 기세가 좋고 김혜민은 올 시즌 약간 부진한 모습이긴 하지만 그래도 주장 김혜민의 승리에 무게가 실린다는 예측이 많았다.

"정유진 선수 오늘 오늘 명국을 뒀는데... 마지막 한 수로 명국을 날려버렸습니다." (바둑TV 홍성지 해설자)

정유진이 이겼다면 완벽한 승리였다. 베테랑 김혜민을 상대로 전투에서 계속 포인트를 올리며 리드했다. 모두가 정유진의 경기력과 성장 속도에 감탄할 때, 믿어지지 않는 수가 바둑판에 등장했고 이 한 수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다.

김혜민이 행운의 승리를 거머쥐면서 섬섬여수가 1-0으로 앞서나갔다.

▲ [정유진(흑)-김혜민] 백▲로 둔 장면.

▲ 실전 진행. 흑3으로 찝은 수가 패착.

▲ 백1로 밀고 들어가자 흑 전체가 사활에 걸려 곤란해졌다.

▲ 백이 워낙 두터워 흑이 몇발자국 못나간다. 흑 대마가 비명횡사 하면서 바둑은 여기서 끝이 났다.

▲ 흑이 그냥 막아두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고, 흑이 넉넉하게 좋은 형세였다. 흑은 순간적으로 밀고 들어가는 수를 간과한 게 아닐까. 홀렸다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실수였다.

▲ 2국 복기 장면.

▲ 1국(장고대국) 박지연-김노경. 신예의 패기가 통하는듯 했으나 끝내 관록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박지연이 김노경과의 첫 대결을 승리로 장식했다.

1국에서는 3연승을 달리며 상승세를 탄 김노경(섬섬여수 3지명)이 박지연(서울 부광약품 2지명)을 상대로 리드했다. 반상에 빈 곳이 많긴 했지만 변화의 여지가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별 탈 없이 진행된다면 김노경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다.

변화는 요술쟁이라 불리는 패로부터 시작됐다. 우하귀 패를 통해 득점을 올린 박지연이 조금씩 따라붙기 시작했고 기어코 역전에 성공하며 신예의 패기를 관록으로 눌렀다.

1,2국의 내용은 예상과 크게 달랐지만 결과는 돌고 돌아 예상대로 됐다. 2국은 섬섬여수의 주장 김혜민이, 1국은 서울 부광약품의 2지명 박지연이 가져갔다. 스코어는 결국 1-1이 됐고 승부는 3국에서 가려지게 됐다.


▲ 3국 허서현(백)-이영주. 끝까지 파란만장했던 대국의 승자는 허서현이었다. 행운의 반집승을 거두며 팀 승리를 결정했다.

3국 허서현(서울 부광약품 1지명)과 이영주(섬섬여수 2지명)는 전반기에 이은 리턴 매치. 전반기에는 이영주가 상대 전적 4연패를 끊고 승리한 바 있다.

공격적인 기풍의 이영주가 장기를 발휘하지 못하게끔 판을 짠 허서현의 작전이 좋았다. 큰 싸움 없이 집 모양이 형성됐고 허서현의 스타일대로 흘러가는 듯 보였는데, 낙관이 발목을 잡았다. 우변 끝내기가 너무 느슨했고(148,152,154수), 중앙을 두지 않고 우하귀 젖혀간 수(170수)가 패착이 될 뻔했다. 중앙을 흑이 두자 형세는 완전히 역전됐다. 백의 승리 확률을 97%로 가리키던 AI의 그래프가 반대로 변했다.

역전에 성공한 이후 이영주의 수는 대부분 정확했다. 좌변 팻감을 받지 않고 우변 패를 이었을 때는 형세판단이 정확하게 돼서 내린 깔끔한 선택인 줄 알았다. '이제 변화의 여지가 없다'라고 생각했을 때 다시 패의 바람이 불었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 [이영주(흑)-허서현] 백2로 막은 장면. 이때까지만 해도 남은 끝내기가 많지 않아서 흑의 승리가 확정적으로 보였다.

▲ 실전 진행. 흑1,백2를 교환하고 흑3으로 끊어간 수가 사건의 발단. 패가 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지금이라도 A로 돌아선다면 흑승이지만 그렇게 되면 흑1,2의 교환이 한집 손해이기 때문에 실전 심리상 쉽지 않다.

▲ 흑1로 이어서 끝내기를 했으면 깔끔했다. 이후 A로 끊어 중앙 백을 패로 추궁하는 수도 여전히 남아있다.

▲ 실전 진행. 백8이 놓이자 집 차이가 줄어들었다. (* 백6은 ▲의 곳 패따냄.)

▲ 흑11이 마지막 패착. 2집이 채 안되는 곳이다.

▲ ▲에 두지 않고 흑1로 두었다면 흑이 최소 반집은 남길 수 있었다.

▲ 백5,7이 좋은 끝내기. 이 끝내기를 백이 해서 승리가 확정됐다.

마지막 3국에서 허서현이 행운의 반집승을 거두며 파란만장했던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서울 부광약품이 섬섬여수를 천신만고끝에 2-1로 꺾었다. 서울 부광약품은 7승 고지에 오르며 단독 2위 자리를 지켰고 섬섬여수는 5승 5패가 되면서 한계단 내려앉아 5위에 랭크 되었다. 개인 승수가 많지 않아 졌다면 4위가 됐을 서울 부광약품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승리였다.

25일에는 순천만국가정원과 부안 새만금잼버리의 10라운드 마지막 경기가 이어진다. 대진은 장혜령-김다영(0:2), 오유진-강지수(2:0), 박태희-이도현(1:1, 괄호 안은 상대 전적).



▲ 완벽한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단 한 수로 승리를 날려버린 정유진.

▲ 생각지도 못한 횡재를 한 김혜민.

▲ 신예의 패기에 관록의 매운맛을 보여준 박지연.

▲ 아쉬운 역전패로 3연승의 흐름이 끊어져버린 김노경.

▲ 믿기 힘든 반집패를 당한 이영주.

▲ 믿기 힘든 반집승을 거둔 허서현.

▲ 섬섬여수 검토실.

▲ 서울 부광약품 검토실.

▲ 서울 부광약품 검토실에 염탐(?)하러 온 이현욱 감독의 모습이 보인다.


2021 NH농협은행 한국여자바둑리그의 정규리그는 8개 팀 더블리그로 진행되며 총 14라운드, 56경기, 168국이 치러진다. 정규리그 상위 4개 팀이 9월에 시작되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 제한 시간은 장고바둑의 경우 각자 1시간에 40초 5회의 초읽기, 속기바둑은 각자 10분에 40초 5회의 초읽기가 주어진다. 정규리그의 모든 대국은 매주 목~일요일 6시 30분 바둑TV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다.

한국기원이 주최·주관하고 NH농협은행이 후원하는 2021 NH농협은행 한국여자바둑리그의 팀 상금은 우승 5500만 원, 준우승 3500만 원, 3위 2500만 원, 4위 1500만 원으로 지난 시즌과 동일하다. 팀 상금과 별도로 정규리그에 지급하는 대국료는 매판 승자 130만 원, 패자 40만 원으로 지난 시즌보다 각각 30만 원, 10만 원이 인상됐다. 이번 시즌부터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는 후보 선수에게 10만 원의 미출전 수당이 지급된다.